top of page

S A M P L E

 

내가 처음 이준호를 처음 보았던 날은 내가 한달에 한 번 지각을 한 날이었다.

준호는 입학식이 한참 지나고 나서 이도저도 아닌 시기에 전학을 온, 그래서 온 전교생의 관심을 받던 전학생이었다. 모두가 그 애가 전학 온 타이밍이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, 라고 말할 테지만 난 그 애가 그렇게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 애가 전학을 온 시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확신한다. 이준호는 교복이 아닌 상복을 입고 있었다. 새까맣고 마르고 덜 컸던 이준호의 몸엔 너무나도 큰 정장에, 팔뚝엔 상주를 나타내는 삼베로 만든 띠가 두르고 있었다. 모두 그 애 옆을 지나며 수군수군댔다. 그러나 이준호는 저를 두고 수군거리는 아이들과 선생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. 귀가 안 들리는 것도,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이준호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. 그 애 주변은 소음과 활기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준호 혼자 진공 속에 들어있는 느낌이었다. 나는 그런 이준호를 헐떡거리는 숨과 함께 보았다.

죽은 건 이준호의 할머니라고 했다. 이준호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손에서만 자랐고 자기를 어릴 때부터 키워준 그 할머니가 이틀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. 장례식장에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데려온 건 담임이었고 교복 대신 상복을 입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린 건 이준호였다고 했다. 그리고 이준호는 이 모든 말이 적나라하게 퍼지는 것에 티끌만한 관심도 없었다. 그 앤 여전히 진공 속에 있었다. 아마 나는 그래서 놀랐던 것 같다. 이준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것보다, 이준호가 언제 그 진공 속에서 빠져나왔는지 눈치 채지 못해서. 내가 들은 이준호의 첫 목소리는 내 이름을 묻는 목소리였다.

 

(중략)

 

아, 그래? 라고 말할 때 이준호는 살짝 웃었다. 나는 웃는 이준호를 보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. 그때 이준호는 진흙 속에서 기어나오고 있었다. 내가 나도 모르게 그 애를 그 지옥에서 꺼내어 준 건지, 아니면 제가 알아서 빠져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이준호는 한 숨 한 숨 들이쉬며 나락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. 남들이 보기엔 해사하게만 보였을 그 애의 웃음에서 나는 진흙이 찐득거리며 짓이겨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.

 

bottom of page